떠나있기 - 1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와 있다. 보리밭과 포도밭이 창문 너머 보인다. 오후 10시인데 해가 지지 않아 낯설다. 다른 행성에 온 것처럼 평화롭고 불시착한 것처럼 불안하다.
어제였다. 무엇을 담을지 무엇을 빼야 할지 모른 채 새벽까지 캐리어 정리를 완결하지 못한 채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오전 8시 30분이었다. 집 앞서 다니는 공항버스를 타려 했지만 다음 차는 3시간 후에 있었다. 시간표를 보니 하루에 4번만 운행했다.
택시를 잡았고 잠깐 졸았을 뿐인데 공항이고 면세점이고 비행기였다. 12시간 비행은 얼마나 불편할까 걱정했지만 취침 약을 먹고 일어나니 도시가 보였다.
중간에 러브, 데스, 로봇
을 몇 편 보았던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택시 타고 잠깐 졸았을 뿐인데. 다른 나라에 왔다. 왜
비행 도중 명확하게 기억나는 장면은 딱 하나. 승무원. 남성 승무원. 음료를 권하던 승무원. 스파클링 워터를 온몸으로 소개해주던 승무원.
반짝반짝 작은 별. 잘 마셨어요.
지나치게 망상에 빠진 채 있다. 딸기잼이 계속 흘러나오는 상상. 뚜껑으로 아무리 막아도 조금씩 끈적하게 비집고 모든 걸 덮어버리는 장면. 달큰하고 걸음이 느려지고 느려지다 못해 달큰한지도 모르다 숨을 거두다 말다 모르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라는 습관적인 말을 결국 하며 느려지겠지.
식은 커피를 마셨다. 토를 꾹 참을 때 신물이 혀 뒤에서 조금씩 퍼질 때, 가끔 토를 시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커피에서 그런 신맛이 난다.
날씨가 계속 좋다. 좋았으면 좋겠다. 그리운 사람은 그립고 그립지 않은 사람도 그립고 그리울지 않을지 모를 사람조차 그립다고 말하는 사람이 그립다.
뭐가 됐든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해.
2022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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